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이먼 리코버 (문단 편집) === 초기 경력 === [[파일:war-20201226-231946-004.jpg]] 사관생도 시절의 리코버 엄연히 [[미국해군사관학교]] 1922년 졸업생[*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에놀라 게이]] 승무원으로서 리틀 보이를 공중에서 조립하여 떨궜던 윌리엄 파슨스와 동기이다.]으로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 대전]] 때도 실전에서 잠시나마 활동하고 [[맨해튼 계획]]에도 관여하긴 했지만, 그의 행보는 군인이라기보다는 '''군 소속 기술진'''이었다. 리코버 제독의 커리어는 함대를 지휘하는 [[체스터 니미츠]]나 [[윌리엄 홀시]]처럼 현명하거나 싸움닭 기질의 제독과는 거리가 멀다. 1940년대 후반 해군이 [[제독들의 반란]]으로까지 이어지는 공군과의 마찰로 뒤숭숭할 때 리코버는 진급 잘되는 항해/항공 병과가 아닌 바다와도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테네시]]주 오크 리지에서 원자력을 공부하고 잠수함 연구에만 실컷 전념했으며, 상부와의 관계도 원활하지 않았다. 1937년 [[노구교 사건]]과 중일전쟁 개전 당시 리코버는 미국 동양함대 소속 상하이 앞바다에서 활동하던 소뢰정 핀치 (USS Finch)를 지휘했고, 미국 동양함대가 재중 미국인들을 안전철수시키는 작전을 완료한 이후 당시 미국 식민지였던 필리핀의 [[카비테]] 해군 조선소 정비소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1939년 미 해군 설계국 전기부 부부장으로 승진하고, [[진주만 공습]] 이후 박살난 USS 캘리포니아 정비를 위해 하와이로 간 적이 있으나 이 이후로 실전 경험은 한 번도 겪지 않고, 2차대전 내내 행정직만 전전했다. 리코버 본인도 군인으로서 명예욕이나 호승심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닌지 2차대전 내내 전선 지휘관으로 보직변경을 여러차례 요청했으나 늘 반려당하거나, 받아들여져도 아싸 드디어 남들처럼 전쟁하러 간다 싶더니 [[펜실베이니아]] 해군 조병창, 그나마 전선에 가장 가까웠던 보직도 [[오키나와]] 해군 수리소 따위였다. 물론 해당 위치들이 일반적인 의미에서 [[전쟁영웅]] 소리 들을 만한 최전선이 아닐 뿐이지 강대국의 총력전에선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란건 미 해군 당국이나, 리코버 본인이나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고, 해당 자리에서도 리코버는 최대한 능력을 살려 2차대전 끝날 때는 공로훈장까지 받고 아는 사람들 사이엔 확실히 유능하긴 하지만 성격은 지랄맞은 미 해군 내 최고의 전기공학 전문가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미 30년 넘게 복무한 그는 [[진급누락]]을 두 번이나 당했고 화려한 실전 경험이나 공훈도 없었지만[* 위를 보면 알겠지만 리코버 입장에선 정말 억울한 일이었다. 리코버는 엄연히 남들처럼 목숨걸고 싸우면서 실전에서도 함선들을 지휘하고 싶어서 보직변경 요청도 여러 번 했지만 군행정가로서 그의 진면목을 파악하고 이쪽으로만 굴린 건 미 해군 당국이었다.], 1953년 6월 말부로 예편당할 위기에 있었다. 그 당시 해군의 다른 간부들이 구축함에 원자로 탑재를 먼저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리코버는 뚝심으로 '''"안돼! 무조건 [[잠수함]] 먼저!"''' 라고 밀어붙여서 원자력 잠수함 개발 사업을 발족하고 원자력 항공모함 사업까지 추진하며 겨우 군생활을 이어갔다. 리코버가 이렇게 잠수함에다 먼저 원자로를 탑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원자로 탑재로 얻어지는 이익이 수상함보다 잠수함에서 더 크다는 결론을 얻어냈기 때문이었다. 잠수함 항목에서 보면 알겠지만 잠수함 승조원들은 해군에서도 가장 고된 노동강도와 숙련도를 자랑하는, 자기 직별에 관한 한 그 어떤 수상함 승조원보다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프로들인데, 리코버의 말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물건인 원자로를 관리하는 첫번째 실험은 해군 최고의 테크니션들인 잠수함 승조원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논리였다. 무엇보다 잠수함은 원자로를 탑재하면 잠항지속 능력이 크게 올라간다는 점에서 잠수함 탑재시 얻어지는 이익은 수상함에 비해 매우 높았다. 실제로 오늘날 미 해군 항모전단의 무적함대화에는 겉으로 보이지 않고 물밑에서 잠항거리 걱정없이 얼마든지 따라다니는 원자력 잠수함들이 큰 공을 세우고 있다. 만약 이때 리코버가 높으신 분들에게 찍히거나 해서 1953년 6월 말부로 옷을 벗었다면 미 해군의 원자력 해군화는 '''10년 정도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미군 원자력화만 늦어지면 차라리 다행이지, 원자력 해군화를 통해 얻어진 기술로 '''[[쉬핑포트 원자력 발전소|최초의 민간 원자력 발전소]]'''를 만든 그의 공로 또한 세워지지도 못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